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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30

‘폴리페서’들부터 달라지기를
이태수 | 조회 422

<李太洙 칼럼> 56-(2007.2.13)

 

‘폴리페서’들부터 달라지기를

 

대학과 정치판을 ‘오락가락’ / 大選 주자에 줄 대기 꼴불견

 

   

 대학(大學)은 문화의 산실이며, 미래의 문을 여는 실험실이다.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곳이다. 대학교수의 본령은 학문 탐구지만 인재 키우기도 그에 못잖게 중요하다. 개인의 지적(知的) 자유 존중, 객관성과 보편타당성은 학문이 지향하는 가치임도 말할 나위가 없다.

더구나 교수들은 우리 사회의 지성(知性)을 대표하며, 여론을 주도하는 지식인 사회의 리더 계층이다. 교육으로 내일의 국가경쟁력을 창출하는 주역들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을 가진 정치권력이 대학보다 우위에 있다고 여기거나 스스로 대학을 낮춰본다면 나라의 장래는 어두워진다.

 

 교수가 제자리를 벗어나 세속적인 출세욕(出世慾)에 빠지면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권위와 신뢰성을 이용해서 개인 이익을 챙기거나 대학의 학사 운영에 차질을 빚게 하면서 권력에 줄을 대면 더욱 그렇다. 이 경우 정치적 영달만 꾀한다고 해서 ‘몰지성적(沒知性的)’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는 건 당연하다.

 

 선거 때가 가까워지면 정치권에 줄을 서는 교수들이 적잖았듯이, 올해도 그런 움직임들이 벌써부터 극성이라 한다. 물론 교수도 정치현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정치적 이상(理想)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그 자유를 막을 근거도 없다. 그러나 대학과 정치판에 양다리를 걸치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곱게 보이지 않는다.

 

 ‘본령 벗어나기’는 차치하더라도 동료 교수와 학생들에게 부담과 피해를 주는 점부터 문제다. 법적으로 보장돼 있는 교수들의 정치 참여를 특히 나무라고 싶은 대목은 교수직을 정계 진출의 발판으로 삼고 있는 행태다. 정치 지향의 야심(野心)을 감추거나 위장한 채 강단에 서서 줄잡기에 연연하는 일부 교수들에 대해선 자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날 정치권은 ‘지적 콤플렉스’나 ‘정권의 정당성 결여’ 때문에 교수들을 적잖이 끌어들였다. 이를 이용해 그 대열에 끼어들고 학자로서 객관성을 잃을 정도로 정파(政派)의 이해에 개입하는 교수들도 허다했다. 실력자와 관계를 맺은 뒤 집권에 성공하면 당당하게 ‘주주’ 행세를 하기도 했다.

 

 이 바람에 ‘폴리페서(poli-fessor)’라는 조어가 낯익어진 지 오래다. ‘정치(politics)’와 ‘교수(professor)’의 합성어인 이 조어는 정치에 참여하거나 참여를 위해 줄을 대는 교수를 가리키지 않는가. 민주화․다원화 사회에 접어든 이후 이런 교수들은 ‘정․관계 진출=어용(御用)’이라는 등식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탓인지, 부쩍 늘어온 것도 사실이다.

 

 정치 활동을 연구․교육과 더불어 사회봉사의 한 형태로 보는 견해도 없지 않다. 정치인 혐오나 관료주의의 폐해에 대한 대안(代案)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정권 창출 이후의 대가를 노리거나 ‘한자리’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면 이 견해에 동의할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실제 강단 지식(학문)의 정책 접목이 현실을 왜곡하고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폐단을 이 정부 들어서도 절감해온 터다. 줄을 잘 서고 충성하는 교수들이 ‘대박’을 터뜨려 떵떵거리며 정권의 전면(前面)에서 큰소리치는 사례를 적잖이 보아 왔지만, 그 결과는 과연 어떠했던가. 학문엔 성숙해도 정치에는 미숙해 실패할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 폐해를 끼치고 자신도 ‘망가지는’ 경우도 있었다.

 

 벌써 대선(大選) 주자 캠프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교수들도 많다는 보도가 있었다. 포럼이나 연구모임을 통해 대선 주자 캠프에 줄을 대려하거나 ‘지근거리’를 만들어보려고 그 문턱을 기웃거리는 ‘꼴불견 행태’를 보이는 이들도 상당수라 한다. 심지어 불러주기를 바라며 ‘볼멘소리’까지 합창을 방불케 하고 있다니 그야말로 가관이다.

 

 조금은 느닷없이 폴리페서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세상이 너무 어지럽고 잘못 돌아가는 데가 많은 것 같아서다. 우리 사회의 지성을 대표하는 리더 계층, 대표적인 지성인들부터 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아래위 할 것 없이 모두 제자리에서 성실(誠實)하게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바른 마음’을 가진다면 정치가 제자리를 찾고, ‘어떤 정치적 노림수나 꼼수도 설자리가 없어지지 않을까’해서이기도 하다.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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